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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영화 좀 볼줄 아는군요?"의 의미

 오랫동안 '영화평론가'란 전문가의 영역이었지만 최근에는 '허세 킹'과 '꼰대'의 사이 어딘가에 걸터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좋은 영화와 좋지 않은 영화를 구분할 수 있을까요? 또 영화 감상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화에 대한 평가와 영화 감상의 방법에는 분명 주관적인 영역이 존재하지만, 생각 외로 많은 부분을 객관적으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이 영화는 좋은 영화이다."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나는 이 영화를 잘 봤다"라고 말하는 게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즉 영화 평론이란 단순한 허세와 허구의 영역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증명 가능한 영역이라는 말이 됩니다. 평론가뿐 아니라 일반인의 입장에서도 더 의미 있는 영화 감상이 가능합니다.

 

무질서함 속 숨어있는 질서

 

 전지전능한 존재와 새가 나란히 하늘에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새는 인간 세상에서 무질서와 혼돈을 찾겠지만, 전지전능한 존재는 질서와 의미를 찾을 것입니다. 새는 겉을 보지만, 신은 속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언뜻 보면 카메라로 담담히 세상을 찍는 것 같지만, 사실 특정 "시선"을 가지고 세상을 렌즈에 담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의 눈에 세상 모든 갈등은 계급갈등으로 비춰집니다. 남편이 TV를 보고 아내가 설거지를 하는 모습을 보며 가부장제 속 피해자와 가해자를 찾으며, 경비원이 차량 출입구에서 회장에게 문을 열어주는 모습을 보며 자본가와 노동자의 삶의 격차를 찾습니다. 새의 눈으로는 알 수 없는 인물 간 "관계"와 사건의 "방향성"이 "시점"을 가지는 순간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다른 해석을 내놓고 다른 감정을 느낍니다. 이는 보는 사람마다 "시점"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시점이 "없는"사람은 없습니다. 시점을 가진 자는 현상 속에서 '질서'를 찾습니다. 무질서하게 땅 위를 기는 것 같은 개미들도 개미의 특성을 이해하는 사람의 시선으로 보면 질서가 보입니다. 사회적 현상에 대해 정치평론가는 특정 시점으로 질서를 찾습니다. 

 

현상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지만 인공적인 상황에 대한 해석은 제한된다

 

 다큐멘터리는 현상을 카메라에 담지만, 영화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상황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깊게 생각을 해 봐야 합니다. 사회 현상은 시선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어떤 해석이 "옳은가"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아닙니다. 영화는 감독의 시선으로 인해 만들어진 인위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어떠한 해석이 "옳은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감독의 시선을 정확하게 캐치하면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숏의 광학적 시점들을 구분하면 감독의 시선을 해석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습니다.

 (1) 1인칭 주인공 시점 (First Person Point of View)

 (2) 1인칭 관찰자 시점 (First Person Observer Point of View)

 (3) 2인칭 시점 (Second Person Point of View)

 (4) 3인칭 관찰자 시점 (Third Person Subjective Point of View)

 (5) 3인칭 객관적 시점 (Third Person Objective Point of View)

 (6) 3인칭 중립적 시점 (Third Person Neutral Point of View)

 (7) 전지전능한 시점 (Omniscient Point of View)

 (8) 새의 시점 (Bird Eye Point of View)

(Boggs, J. M. (1989). The Art of watching Films)

 

 

 영화에서 전하고자 하는 바는 정해져 있으므로, 이제 이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감독이 얼마나 일관적이고 명확한 시선을 가졌는지, 그 시선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정확하게 전달했는지, 그 과정에 비효율이 있었는지, 얼마나 세련된 방법으로 전달되었는지 등등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영화에 대한 해석 방법이 딱 하나라는 것은 아닙니다. 제한된 영역 속에서 개개인에게 다가오는 느낌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 다양한 느낌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습니다. 또, 감독의 시선이 명확하지 않거나 하나 이상으로 해석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감추었다면, 감독의 시선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영화감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영화 속에 담겨있는 상징적인 의미들과 구조를 정확하고 명백하게 해석하고 풀어내는 과정이 바로 영화 해석입니다. 최근에는 감독의 시선을 아예 무시하거나 왜곡하여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는 "영화 해석"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특정 영화를 도구 삼아 별개의 사상이나 감정에 대한 논의가 되는 것 같습니다. 수영장에서 벗어나서 춤을 추면서 "이것도 수영의 일종이다!"라고 외친다면,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고, 갸우뚱하는 사람도 있을게 분명하죠. 이를 영화 감상이라고 칭해보겠습니다

 

영화 해석 이상의 영화 감상

 

영화 해석은 영화와 나 사이에 선을 그어놓습니다. 한 발치 떨어져서 영화를 뜯어보는 거죠. 그러나 이것이 감상이 되기 위해서는 영화와 나 사이에 선을 지우고 연결시켜야 합니다. 영화는 감독의 말을 직접적으로 전하는 매체가 아닙니다. 상징과 은유와 서사 구조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죠. 여러 장치들을 해석하고 그중 특별히 나에게 의미가 있는 것들을 인식한다면 영화 감상의 단계로 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삶의 의미와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까지 돌아볼 수 있습니다.  정신적인 자기 성장의 도구로 삼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