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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영화를 통한 심리치료 - 치료적 기제 (2) 신화와 스토리텔링

 영화 안에는 상당히 많은 상징과 은유가 들어있습니다. 이는 영화를 통한 심리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심리적 치료의 기본은 고착화되어있는 특정 사고방식을 유연하게 만들어주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상징과 은유를 통해 관객의 심리적 저항을 우회하여 고착화된 사고방식에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다만 상징과 은유는 단편적으로 작동합니다. 이에 반해 스토리텔링은 은유와 상징이 가득한 서사 구조 자체로서 내담자의 무의식에 도달하게 할 수 있습니다.

 

집단 무의식과 신화 

 

 칼 융은 의식의 층 아래에 무의식의 층을 둘로 나누었습니다. 개인적 무의식과 집단적 무의식입니다. "무의식"이라는 개념 자체를 프로이트로부터 이어받은 융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무의식의 차원을 나눈 것입니다. 개개인이 삶을 살아오면서 억눌린 욕구와 금지된 욕망들이 개인적 무의식을 형성하는 반면, 집단적 무의식은 개인보다는 인간이라는 종 자체가 지니고 있는 무의식 차원입니다.

 

 범 인류적으로 "뱀"과 "어두움"은 무의식적 차원에서 두려움을 자아냅니다. 수만 년의 역사를 가진 호모 사피엔스의 무의식 가운데 뱀과 어두움에 대한 거부감이 자리 잡은 것입니다. 뱀과 어두움은 하나의 예시입니다. 시대와 문화와 인종을 뛰어넘는 '집단 무의식' 차원의 공통점이 모든 인류에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집단 무의식의 흔적을 우리는 '신화'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신화'란 전 세계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신화는 비슷한 골자를 지니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역경을 겪고 그 역경을 이겨내며 성장하는 과정이 담겨있습니다. 지역마다 같은 신화가 내용이 다르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골격이 비슷합니다. 이 말은 '집단적'으로 창작된 신화가 인류 종 전체의 집단무의식이 반영된 산물이라고 해석됩니다. 인류 보편적인 가치나 성장과 변형을 긍정적 가치로 바라보는 인간 본성이 각 신화에 녹아져 있는 것입니다. 신화는 인간 집단 무의식의 산물이고, 그 신화는 또다시 각 사람에게 모델링 효과를 통한 변화를 촉구합니다.

 

 신화가 집단무의식의 투사라면, 오늘날의 신화와 같은 역할을 하는 영화 또한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비록 개개인의 창작자가 확실한 영화의 경우, 개인 무의식의 영향이 훨씬 크겠지만요. 그러나 만약 영화가 전통적인 신화와 비슷한 플롯으로 전개되고 비슷한 은유와 상징을 사용한다면 개개인의 심리적 저항을 피해 무의식 층에 곧바로 호소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됩니다.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이 딱 그런 예시입니다.

 

스토리텔링

 

 우리의 삶은 이야기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작이 있고 끝이 있으며, 시작으로부터 끝으로 달려나갑니다. 태어나는 순간과 죽는 순간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정 사건의 시작점이 있고, 그 사건이 끝나는 지점이 따로 있습니다. 그러나 이 스토리텔링은 시간 순서에 따른 사건의 나열이 아닙니다.

 

 한 개인의 스토리텔링은 주관이 항상 들어가 있습니다. 한 관점으로 사건을 바라보며, 사건과 그 사건에 등장하는 요소(인물이나 사물)들이 말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어떤 것은 확대되고 어떤 것은 축소됩니다. 즉, "스토리텔링은 우리의 내적 자아가 외부 세계와의 관련 속에서 빚어내는 자기 해석의 틀"(May,1961)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반대로 스토리텔링 형식의 이야기 전개를 더 잘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학창 시절 수업시간에 딱딱한 이론을 전하는 선생님과, 마치 이야기를 하듯 설명해주는 선생님의 인기가 다른 것이 다 이유가 있습니다.

 

 집중의 상태에서 스토리텔링을 듣는 것은 무의식의 층위에 영향을 미칩니다. 영화를 볼 때 사람들은 환경적 그리고 자발적으로 집중의 상태에 들어가게 됩니다. 최면 상태와 비슷한 이 조건에서 스토리텔링 하는 영화는 그 완성도나 구조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람의 무의식에 새로운 관점을 심어주거나 치료를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출처가 분명하고 진실에 가까운 "신화"입니다. 집단 무의식의 발현이며 또 무의식에 호소할 수 있는 가장 큰 무기입니다. 고전 신화와 비슷한 방식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시나리오들은 실제 삶의 변화를 상당히 이끌어 낼 수 있는 좋은 수단입니다. 단순히 잘 쓰이고 잘 짜인 영화를 집중해서 보는 것 만으로 '깊고 현명한 자신으로 살기 위한 격려'(김준형, 2021)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