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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주인공"이라는 말 대신 "프로타고니스트"라고 해보자

프로타고니스트

 

영화든 연극이든 소설이든 어쨌든 서사를 가지는 이야기에는 반드시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주인공이 여럿일지언정 이야기에 주인공이 없는 경우는 없습니다. 주인공이 없다면 "이야기"라고 할 수 없겠지요. 영화의 주인공은 영화의 중심인물이며, 관객이 감정과 신경을 몰입하는 존재입니다. 영화가 진행되는 장면마다 주인공은 관객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전달합니다. 관객들은 주인공의 열망, 욕망, 목적, 행위에 공감하고 이를 이해합니다. 이 주인공을 "프로타고니스트 (protagonist)"라고 불립니다. 고대 그리스어 단어 "prot(첫 번째)"와 "agonist(참가자)"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용어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는 부정할 수 없는 프로타고니스트의 전형입니다.

 

안타고니스트

 

대부분의 극에는 주인공의 열망과 목적에 반대되는 적대자가 등장합니다. 주인공을 방해하며 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합니다. 1차원적인 악당의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입체적인 인물로 설정될 경우 관객들은 이 적대자의 열망과 목적에도 공감할 수 있습니다. 만약 프로타고니스트가 악한 인물로 설정이 된다면, 반대로 이 적대자가 선한 인물로 설정될 수 있습니다. 영화 내에서 주인공을 방해하거나 그 열망에 공감하지 않는 모든 캐릭터를 이 '적대자'로 설정하지는 않습니다. 적대자는 주인공과 같은 위치로 격상된 상황입니다. 이를 안타고니스트(Antagonist)라고 부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티발트가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를 선명하게 보여주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유명한 최근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 블랙팬서입니다. 블랙팬서와 트찰라는 선명하게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의 대립을 보여줍니다. 블랙팬서는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는 상태로 전 세계 평화에 공조하고자 하지만, 트찰라는 이에 반대합니다. 근현대 역사에서 서양 세력에 의해 착취되었던 모든 흑인들을 중심으로 무장 투쟁을 주창합니다. 관객들은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 모두에게 공감하며 어느 한쪽을 절대 악과 절대 선으로 평가할 수 없었습니다. 

 

 

역사의 일부분을 잘라서 보면 영화같기도 합니다. 실제로 역사 기반 영화들이 그렇지요. 가상의 이야기를 덧대어서 영화화하기도 합니다. 블랙펜서와 트찰라의 갈등 구조는 실제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의 역사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인종의 경계를 뛰어넘는 흑인 인권운동을 펼쳤던 마틴 루터 킹과 흑인 민족주의를 주창했던 말콤 엑스(Malcom X)의 사상 대비에 가상의 시나리오를 부여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인종통합주의와 인종분리주의의 대립이죠.

 

 

피보틀 캐릭터

 

영화를 보다 보면 행동 양식이 안타고니스트에 가깝지만, 주인공으로 설정된 경우들이 있습니다. 프로타고니스트라고 치부하기에는 안타고니스트의 행동에 가깝지만, 관객들에게 동정심이나 애틋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프랑캔슈타인이나, 킹콩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이런 캐릭터를 피보틀 캐릭터(pivotal character)라고 부릅니다. 다만 현대 영화에서는 이미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의 경계가 거의 무너졌습니다. 때문에 피보틀 캐릭터라는 용어가 쓰이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영화계의 논문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많이 다뤄지고 있습니다. (ex. 현대영화의 프로타고니스트 활용방법, 2019, 류훈)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 설정의 변형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라는 용어가 서양에서 시작된 것이긴 하지만, "이야기"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에나 존재해왔습니다. 모든 이야기에는 프로타고니스트가 존재합니다. 이 프로타고니스트에 대한 조건은 문화권과 시간에 따라 다르게 설정되어왔습니다. 전통적으로 미국 영화의 경우 백인 남성과 개신교적인 전통을 지키는 것이 프로타고니스트의 조건이었습니다. 그 외의 곳에서는 다른 조건으로 설정되었죠.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프로타고니스트의 조건은 바뀌어왔고 현대 영화의 경우에는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의 선 또한 불분명해졌습니다. 이야기마다, 감독의 의도마다 다르게 설정되었습니다. 2019년 개봉한 조커의 경우에는 기존 프로타고니스트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난 존재가 주인공으로 설정되어왔고 그의 이야기에 전 세계 관객들이 동조되었습니다.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라는 개념은 우리가 영화 감상을 할 때 하나의 잣대를 더해줍니다. 누가 프로타고니스트인지, 누가 안타고니스트인지를 신경 쓰면서 영화를 볼 수 있죠. 주인공의 욕망과 열망은 무엇인지, 여기에 우리는 공감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생각하며 영화를 본다면 좀 더 높은 수준의 영화 감상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