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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영화를 통한 심리치료 - 치료적 기제 (4) 놀이적인 속성의 힘, 안전한 거리의 힘

놀이적인 속성의 힘

 

 프로이트는 유아기 때부터 성적인 욕구가 행동에 동기를 부여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 유아 성욕론에 대한 단순한 심리적 거부감만 나타낼 뿐 아니라, 이론 자체에 대해 반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영국 정신과 의사였던 위니컷(Winnicott, 1971)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대한 공부 이후 새로운 이론을 펼칩니다. "대상관계 이론"입니다. 대상관계 이론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는 다르게 "성적인 욕구"가 아니라 "타인과 관계를 맺으려는 욕구"에 의하여 사람이 행동에 동기를 부여받는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이 대상관계 이론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개념이 바로 "잠재된 공간(potential space)"입니다.

 

잠재 공간 (Potential Space)

 

 모든 사람은 자신 내면의 주관적인 세계와 외부 현실 세계를 별도로 인지하고 있습니다. 나의 내면의 주관적 세계는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지만 외부 세계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건강한 성인은 이 둘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합니다. 그러나 이 둘을 구분하는 능력은 태아 시절 완벽하게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기가 태어나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형성됩니다. 아기는 태어났을 때, 세상과 자기 자신을 그저 한 덩어리로 인식합니다. 거대한 공간인 세상과 자기 자신과 자신을 돌보는 어머니, 이렇게 별도로 느끼지 않습니다. 어머니를 독립적인 개체가 아닌, 그저 젖가슴으로 인지합니다. 

 

 아이가 자라나면서 주관성의 세계와 외부 현실의 차이를 인지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잠재된 공간(잠재공간, 잠정 공간)"이 생겨나게 됩니다. 외부와 내부의 중간 영역입니다. 유아 시절 비논리적이며 비현실적인 놀이가 아이에게는 현실로 다가올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 "잠재 공간"의 유무에 있습니다.

 

 이 잠재공간에서 아이는 외부 세계를 마음대로 조정하고 이 과정에서 만족감을 얻습니다. 이를 "놀이"라고 합니다. 유아나 성인을 가릴 것 없이 모든 놀이는 기본적으로 현실을 가상으로 조정한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아는 잠재 공간에서 놀이를 통해 현실을 준비하고, 성인은 놀이를 통해 어린 시절의 즐거움을 회상합니다.

 

 예술성, 창조성, 종교적 경험 등 현실과 주관 사이의 중간 영역에 걸쳐있는 모든 것들은 이 잠재 공간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현실이 왜곡되며 그 안에서 즐거움과 생산성과 신성함을 느끼는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퇴행하는 용기

 

 유아를 미성숙으로, 성인기를 성숙으로 부르자면 유아기에서 성인기로 나아가는 것을 "발전"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성인기에서 유아기로 돌아가는 것을 "퇴행"이라고 하죠. 치매에 걸린 노인은 자신을 유아로 인지하기도 합니다. 이를 "정신적 퇴행"이라고 부르고 부정적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나 의도된 정신적 퇴행은 즐거움을 선사해주고 더 나아가 상처의 치료까지 가능합니다.

 

 영화는 시청자들을 잠재공간으로 데려다줍니다. 최면에 걸린 듯 집중한 상태의 관객은 영화에 몰입하며 의도적으로 현실감각을 무디게 만듭니다. 영화의 플롯과 주인공의 감정선과 사건의 연속에 집중하며 마치 자신이 그 세계에 포함되어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이런 의도된 최면상태는 "기쁨"을 선사하며 영화 속에 동참하도록 만듭니다. 이는 관객에게 "퇴행하는 용기"를 부여합니다. 관객은 어린 시절을 느끼고, 억눌린 욕망이나 알지 못했던 결핍에 대한 대리 만족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감추어져 있던 정서를 치유받는 경험도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심리적 저항이 최소화된 채로 관객을 무의식 세계를 마주하고 치유를 경험할 수 있는 현실을 초월하는 상태로 인

 

영화는 관객의 심리적 저항을 최소화한 채, 무의식 세계를 마주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합니다. 여기서 관객은 현실을 초월하는 경험과 치유를 경험합니다.

 

 

안전한 거리의 힘

 

 제4의 벽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관객은 무대에서 일어나는 세계를 완벽하게 인지하지만, 무대의 배우들과 진행되는 이야기는 관객에 대해 무지합니다. 영화와 관객 사이에도 벽이 있어 서로에게 관여할 수 없습니다. 관객은 영화 속 세계가 자신이 발붙이고 있는 세상과는 다르다는 것을 인지합니다. "거리감"을 느낀다는 말입니다.

 

 이 거리감은 다른 말로 "안전함"을 의미합니다. 무의식 속에는 수 많은 억압과 결핍, 흥분과 욕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놀이를 통하여 우리는 이 욕구들을 어느 정도 충족합니다. 영화에도 놀이적 속성이 존재합니다. 영화를 통해 현실 세계에서 억눌린 욕구와 욕망들을 "안전하게"경험할 수 있습니다. 바로 영화와 관객 사이의 "거리감"때문에 그것이 가능합니다. 이를 "거리의 힘"이라고 합니다. 

 

 현실세계에서 우리는 우리가 마주한 문제와 나 사이에 벽이 없습니다. 그 때문에 문제는 우리에게 고통을 주며 불안전함을 야기합니다. 하지만 영화 속 문제는 내 일이 아닙니다. 거리감이 존재하고 그 거리감은 "안전한 느낌"을 줍니다. 우리는 영화를 보며 영화 속 제기되는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객관성은 거리감으로부터 나옵니다. 문제를 새로운 방향으로 바라보고 해결방법을 제시할 수 있고, 새로운 해석 또한 내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치료를 할 때 조심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내담자가 겪고 있는 문제가 영화속에 제기된 문제나 경험과 너무 비슷한 경우는 오히려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영화라는 벽이 가져다주는 심리적 거리감이 무색해질 만큼 동일한 문제 제기의 경우 거리감을 상실하여 영화치료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참여자와 무관하거나 관심이 하나도 없는 주제의 영화는 반대의 문제를 가져옵니다. 거리감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치료의 도구로 사용할 때는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야 합니다.